건빵, 별사탕, 별사탕, 라면땅. 흑백 TV에서 나오는 지직거리는 소리가 방안을 채운다. 방 한 칸, 이불보를 펴면 침실이 되고, 걷으면 거실이 되고, 상을 펴면 주방이 되는 허름한 달동네 찾을 수도 없는 집. 문은 몇 번이나 깨져 노란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여져 있고, 벽지 모퉁이엔 곰팡이가 슬고 누렇게 번져있다. 늦은 새벽, TV는 이미 알 수 없는 화면...
언택트 유니버시티 14 (※미성년자의 흡연 묘사가 나옵니다.) "우리 다시 안 마주쳤으면 좋겠다." 그게, 그날 나누었던 대화의 마지막이었다. 사월 중순. 정민이 가만히 침대에 앉아 봄비가 내리는 창문 밖을 내다본다. 그렇다고 정말 홍승호는 그 뒤로 아무 말이 없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도 올리질 않았고, 새로운 게시글도 올리질 않았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언택트 유니버시티 12 무슨 생각으로 달려왔는지도 모르겠다. 머리가 시킨 일이 아니라 두 다리가 저절로 움직였다. 전에 한 번 와 본 길이라고 그새 길을 외웠는지 아파트 단지 안으로 익숙하게 뛰어 들어갔다. 한쪽 손으로는 핸드폰을 들어 승호에게 전화를 걸었고, 다른 손은 무릎에 올려 곧 쓰러질 듯한 몸을 지탱하며 숨을 골았다. 받아라, 제발 받아라. 받아서...
언택트 유니버시티 11 -홍승호: 선배 이 카톡 보면 전화 주세요 할 말이 있어요 오후 7:54 홍승호가 좋다, 좋다, 좋아서 미치겠다. 지배적으로 정민의 뇌를 정복한 생각이 이제는 제멋대로 정민의 몸을 조종했다. 흡연실 문을 거칠게 연 정민이 테이블로 돌아와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고 지갑을 챙겼다. 몸을 돌려 가게를 나서려는데, 그 모습을 본 효정이 정민...
언택트 유니버시티 10 4월. 승호의 입대는 다섯 달로 가까워졌고, 그렇게 조별 과제가 끝난 뒤 카톡 방은 조용했다. 평소 같았으면 효정이 시답잖은 얘기라도 꺼냈을 텐데, 몇 주 뒤에 있을 시험을 준비하는지 조용했다. 편의점에서 승호를 마주치는 일도 없었다. 정민이 불과 한 달 전에 상상했던 복학 후의 생활은 이거랑 똑같은데, 놀랍도록 건조하다. 평소와 똑...
언택트 유니버시티 09 "혹시 둘이 잔 건 아니죠?" 주말. 조별 과제로 인해 정민의 집에 다시 셋이 모였다. 승호는 그날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갔다. 같이 해장이라도 하자 했지만, 승호는 거듭 거절하고 택시를 잡았다. 저번 승호처럼 버스 정류장까지만이라도 데려다주고 싶었건만, 그마저도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철벽이 높았다. 좋아하는 사...
언택트 유니버시티 08 패기 있게 홍승호를 우리 집으로 불러오는 데는 성공했다. 그런데, 그다음에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정민의 집에 발을 들인 승호는 얌전히 신발을 벗고는 그걸 가지런히 정리했다. 주변을 조금 살피더니 살며시 바퀴가 달린 등받이 의자에 앉았다. 일단,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와 안줏거리 몇 개를 사 오긴 했는데, 얘 신입생 환영회 때도 ...
언택트 유니버시티 07 "보고 싶어. 승호야." 빈속에 마신 술에 취해서였을까. 아니면, 불에 기름을 붓는 것처럼 달아오른 취기에 담배를 피워서 그랬을까. 민주의 사원증이 부러워서? 지난 시간 동안 자신을 깎아내렸던 진형에게 열 받아서? 아무튼, 심술이 났다.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에게도 심술이 났다. 생각이 단순했다. 좁은 골목길에 정민이 엉덩이를 붙이고 ...
언택트 유니버시티 05 "선배 홍승호 좋아하는 거, 티 존나게 난다니까요?" 아니라고 해 안정민 이 병신 새끼야. 무슨 말이냐고, 뭔가 착각한 거 같다고 둘러대기라도 하란 말이야. 정민은 대답을 하는 대신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비벼 껐다. 그리곤 효정을 따라 얼마 안 남은 담배 중 하나를 빼 불을 붙였다. 군 생활 중 짬이 날 때마다 폭연하던 습관이 제대하...
언택트 유니버시티 04 "안녕하세요 선배님, 처음 뵙겠습니다." 홍승호가 여길 어떻게 알지? 아…. 이미 한껏 흥분된 상태로 수업을 듣다가 급하게 캠을 꺼버려서 뭐라도 눈치챘나. 그래도 그 상대가 자신인 것도 모를 텐데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저번에 콘돔 살 때 내가 이상하게 굴어서 따지러 왔나, 표정 숨긴다고 숨긴 건데. 아니지, '선배님' 이라잖아.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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